죽을 때까지 일해야하는 사회.

예전 사회는 집안의 자본을 자식 한명에게 몰아서 투자하고, 그가 평생 벌어오는 수익을 분배받아 가족 모두가 살았다. 몰빵투자를 받은 자식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 탄탄한 직장에 들어간뒤 대출을 약간 끼고 자산을 샀다. 그 자산의 가치상승, 자신의 임금상승 두 가지 효과로 은퇴할 쯤이 되면 기존 자산에서 나오는 각종소득과 연금으로 생활이 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은 시절이 변했다. 시사인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34 를 보면, 대학교에 들어가봐야 이제는 예전만큼의 투자수익률이 나오지 않는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정규직으로 취직할 수 있고, 자기 밥벌이를 하는 정도만 벌 수 있다. 조금 아래 레벨 대학교에 들어가면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고,  자기 밥벌이가 힘들다. 좋은 정규직을 얻더라도 예전처럼 자산을 취득하기는 너무 어렵다. 임금대비 자산가격이 너무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운이던 부모의 도움이던 충분한 자산을 취득하는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생 일을 해야한다.


평생 일을 해야된다는, 일이 끊기면 살 길이 막막하다는 점은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 만든다. 모두가 일자리에 목을 매기 때문에 잠깐의 경력단절과 모험은 실패시 크나큰 리스크로 실현된다. 지금 이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야만 한다. 점점 더 벤처정신은 없어지고, 똑바른 말을 하기 어려워진다. 반면 인생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진다.


결국 자산을 이미 가지고 있는 층에서 새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양보가 필요하다. 사회시작 생활 시작할 때, 결혼할 때, 애 낳을 때 어느 정도의 보조를 주고 집을 처음으로 구할 때도 혜택을 줘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출로는 의미 없다. 그건 진정한 의미의 보조가 아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돈을 받고 파는 행위일 뿐이다.


먼저 젊은 층에서 목소리를 내야한다. 단순히 출산을 기피하고 결혼을 기피하는 소극적인 반응이 아니라, 모여서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일할 수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에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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