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 – 이방인.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모두 죽으니, 나 역시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내 인생은 이렇게도 생생한데, 이 인생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부사람들은 내세를 믿는다. 내 자신의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내가 죽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 다른 사람들은 죽음의 존재를 가벼이 여긴다. 누구나 죽는 것 별 수 있나. 나도 언젠가 죽겠지. 그게 뭐 대수야. 살아있을 때는 그냥 살면 돼하고 생각에서 지워버린다.

진정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방인이다. 어차피 죽을 인생.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 엄마의 죽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내가 저지른 살인도 다 의미없다. 사회의 도덕, 법률, 그리고 남들의 시선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아무 것도 안 남지 않는가.

그러나 죽음이 진짜로 얼마남지 않게 되면, 생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죽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올 때만 알 수 있다. 그 때서야 죽으면 아무것도 안 남는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된다. 그리고, 죽음을 부정하게 된다. 갑자기 회개하고, 참회하고, 내세를 바란다. 보통사람들의 경우엔 말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거기서도, 자신의 생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았음에도,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회개를 권유하는 신도를 뿌리친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끝까지 주장한다. 자신의 인생을 죽음 직전까지 제 3자처럼 봤고, 그래서 그는 사회의 이방인으로 남아 죽음앞에 존재를 지켜낸다.

죽음은 무섭다. 언젠가 다가올 그것이다. 대충 살건, 열심히 살건 온다.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대충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고 다 부질없을 지언정 순간순간에 열심히 사는 것 또한 하나의 인생이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떠나야하는 운명이 얄궂을뿐, 내 인생을 이방인처럼 살 수는 없다. 인생을 마디마디 실컷 누리고 떠날 때, 한 점 아쉬움없이 이방인이 되는 것. 그게 까뮈가 제시하는 사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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