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어제 삘 받아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끝까지 완독. 재미있었다. 조르바라는 자유로운 인간과 나라는 관습적인 인간을 통해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내 주위엔 두 사람의 조르바가 있다. 우리 아버지, 배범삼대표. 세상에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데 그것이 꽤 자주 정답인 경우인 사람. 두 사람 모두 사실 책을 많이 읽었고 인생에서 이래저래 많은 경험을 통해 얻어낸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관습적인 화자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는 김태희가 떠오른다. 너무나 열심히 살았고, 가르쳐준대로 하는 것을 모토로 살아왔기에 대본을 외워야만 하는 배우. 외우다보니 자연스러운 연기가 절대 안되서 연기자로는 결국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대본은 대충 훑어만 보고 그 순간순간 감을 따라서 연기를 한다는 공효진은 조르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공효진은 연기자로서는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조르바가 좋다. 조르바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조르바는 그런데 아무나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쟁에 참여하고 세상에 배신당해보고 온갖 풍파를 거친 후에 체득한 철학을 가진 사람만이 조르바가 될 수 있다. 그 경지에 이르러야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정답을 낸다.


조르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나’처럼 사는 것이 안전하다. 책을 많이 읽고 여러가지 상황에서 세상이 마련해놓은 정답을 따르는 것이 확률적으로 실패의 리스크를 가장 줄여준다. 성공확률은 대신 낮을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나’에서 조르바의 자세로 넘어갈 지 결정하는 것이다. ‘나’처럼 살면 영원히 세상의 관습대로 산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야 조르바처럼 살 수 있는 지 알려주는 지표란 없다. 그래서, 자유란 것이 어렵다. 아무에게나 자유를 준다고 다 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까지도 ‘나’다. 가까운 곳에 조르바가 두명이나 있지만, 그래서 더 ‘나’처럼 사는 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나’처럼 살지는 내가 결정해야될 문제다. 40세 이후에는 조르바처럼 살 수 있는 내공이 쌓여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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