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

개천절 연휴를 맞아 나들이겸 천리포 수목원을 다녀왔다. 여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수목원만 보고도 한 사람의 인생이 어땠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사실 처음이었다.


설립자 민병갈은 1921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일본어 통역장교로 일본에서 근무하다 1945년 한국에 부임하게 되었고, 한국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1946년에 제대후 미국에 귀국했으나 한국이 그리웠던 나머지 1947년 미군 정책고문관으로 재입국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1951년 일본으로 피난했으나, 1952년 다시 한번(!)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은행에 취업한다.  그는 1962년 천리포수목원 부입을 매입한 것으로 시작으로 2002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수목원을 가꾸었다.



이 수목원은 다른 수목원과는 달리,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한 곳에 테마를 정해 한 종 혹은 서너 종을 집중적으로 심는 방식으로 조경을 만든 게 아니라서, 드문드문 별 통일성 없이 온갖 나무와 꽃이 심어져 있다. 하지만 이 점이 천리포 수목원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다. 마치 뒷산에 산책을 나온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수목원을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로는 이 수목원을 감상하기 위한 관람객들을 위한 조경이 아니라 나무들이 어울려있는 모습을 보기 좋아한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수목원은 처음 몇 년간은 개인 정원이었고, 그 후에 수목원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큰 부지를 갖춰서 계획적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라 점점 수목원이 확장 되었기 때문에도, 강남같은 반듯반듯함 보다는 강북의 꼬불꼬불함을 더 닮아있다.


둘째로는 이 민병갈이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들어와 한번은 제대하기 위해 한 번은 6/25전쟁에서 피난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음에도 결국 다시 돌아온 그는 한국의 자연을 정말정말 좋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자연을 좋아한 사람이 유럽의 반듯하고 잘 가꿔진 모양으로 수목원을 조성할 리는 없다. 한국의 자연이란, 스케일은 작지만 오밀조밀 자연과 어울리는 그런 맛이 매력 아니던가.


이런 지식은 천리포 수목원을 나오는 길에 있는 민병갈 기념관에 있는 사진과 글들을 보며 얻은 것이다. 신기한 것은, 수목원을 보고 받은 느낌과, 민병갈 기념관에 있는 그의 인생을 알게되면서 받은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잘 없는 외국식물들이 가장 한국적인 정원에 심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외국에서 건너왔지만 한국을 결국 좋아하게 되어 뿌리를 내리게 된 민병갈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민병갈의 인생은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수목원 2시간만 돌면 민병갈의 80년 인생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꼭 다시 오고 싶은 수목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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