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읽고.

1.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일본 수학자가 있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드상을 38살에 탄 사람이다. 40살이 넘으면 상을 못 받는다고 하니, 거의 최고령으로 받은 셈이다. 보통 20대 초반에 천재들이 가장 왕성할 때 받는 이 상을 느즈막히 탄 걸 보면 뚝심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뭐 암튼 늦게 타긴 했어도 당대 최고의 수학자 중 한 사람인 헤이스케씨는 자기는 천재도 아니고, 똑똑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할 뿐이라고. 그 쟁쟁한 천재들 사이에서 나 정도 인물도 성공했다고,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잔잔히 이야기를 펼치는데, 이게 좀 마음에 울리는 면이 많다. 압축하면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필드상을 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은 작년 올해 최고의 베스트 셀러인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만큼이나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다.

2.    조금 남들보다 늦었지만, 1960년대에 하버드에 유학 갈 정도니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똑똑하긴 똑똑한 사람이다. 단지 주변에 너무 천재가 많았을 뿐이다. 연구실에 자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동료들이 자기는 엄두도 못낼 정도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줄 때 아마 일반인이라면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30이 넘어 2년간 인생의 프로젝트라고 집중한 연구를, 그것도 이미 사람들에게 나 이거 연구할 거고 풀어낼 거다라고 널리 알린 후에, 독일에 어느 20대 천재가 먼저 풀어버렸을 때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심한 멘붕을 겪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다시 못 일어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런데 헤이스케 씨의 반응이 좀 황당하다. ‘나는 바보니까 괜찮다그리고는 왜 내가 실패했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 예전 세미나에서 사람들에게 아름답다라고 칭찬받은 것 때문에, 자신의 방법을 고집한 것이 패인이었구나!라고 깨닫고 다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이게 말이 쉽지, 처절한 패배 후에 이렇게 홀연히 다시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자기가 졌다는 사실에 집중한 게 아니라 왜 틀렸는가에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다음에 잘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점.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머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되는데. 이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내가직접 겪어봐서 안다. 잠깐 여기서 내 얘기를 좀 해보자
      
3.    전성기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전성기란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이 정의에 따르자면 내 전성기는 고3때였다. 공부를 하는 만큼 성적이 나와줬고,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를 안고 이대로만 간다면 어릴 적부터의 내 꿈이었던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에도 그리던 서울대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내 인생은 주욱 내리막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난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던가 그렇지는 않았다. 단순히 인생이 재미가 없었다. 가장 자신 있었던 공부에서 막힌게 컸다. 내가 노력을 하는데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주위 친구넘들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나보다 머리가 좋았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친구랑 같이 시험기간 내내  당구장에서 당구치고 놀다가 미적분 시험을 들어갔는데 나는 백지를 냈는데 옆에 놈은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어서, 끝나고 너 뭐 썼냐하고 물어보니, 그 자리에서 공식을 유도해서 풀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 타고난 종자가 다르구나. 나는 이 넘한테 머리로는 죽어도 못 이기는구나. 분하고 말고를 떠나서 압도적인 패배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 군대갈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성적이 안 좋은 건, 내가 안 해서 그런 거다라는 변명이 필요해서 그랬던 것 같다.
복학한 후로, 3학년 1학기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머리로는 녀석들에게 안 된다. 노력으로 이기자. 그리고는 꽤나 열심히 했다. 3 이후로는 가장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물리화학에서 A-를 받았다. A+를 못 받은 게 그리 속상했다. 그 이후로는 조금이나마 미련이 있었던 유학이라던가 교수로 가는 학문의 길은 아예 포기했다. 그리고는 나 머리 안 좋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노력까지 했음에도 결국에 목표를 못 이뤘다는 사실이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난 머리 나쁜 걸로 하기로 했다. 나는 바보니까라는 말을 헤이스케씨랑 정반대의 이유로 한 셈인데, 참 그릇의 크기라는 게 이런 데서 나오는 건가보다. 
 또 하나, 10년간 나를 괴롭혔던 이 고민은 사실 남들에게 말할 수가 없어서 더욱 괴로웠다. 어디서 이런 얘기하면 공감은 커녕 배부른 소리나 한다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고, 주변 친구들한테는 자존심이 상해서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카이스트까지 가서 자살하는 친구들은 나 같은 고민을 훨씬 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리고 10년간 묶은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드디어 찾았다.

4.    내 시야가 너무 좁았다. 남보다 잘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거늘. 내 스스로가 큰 목표를 향해 한 발짝씩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데, 그걸 몰랐다. 뭐 사실 그 당시 큰 목표도 없었기도 했지만, 이 책을 그 때 읽었다면 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깊이 탐구하고, 그것이 명확해지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나갔다면, 대학교부터 재미없었던 내 지난 10년이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하는. 하지만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된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방황하면서 적어도 나만의 목표가 생겼으니 말이다.


5.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늘 남이랑 비교하게 되고 주위에 잘난 사람 때문에 주눅들고 이 탓 저 탓 해가며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면서 그냥 저냥 살기 마련이다. 재밌는 건 하바드까지 간 사람도 상황이 그닥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하바드까지 가서 남이랑 비교하고 그러면 보통 사람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천재들 사이에서 결국 자기의 길을 완성한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에, 용기를 얻는다. 한 발 한 발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걷다 보면, 헤이스케씨가 먼저 느꼈던 ‘학문의 즐거움’을 나도 언젠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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